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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황제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1906년 5월 독일 빌헬름 2세에게 보낸 밀서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 그 동안 문서가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오랜 세월 숨어 있던 밀서가 참으로 반갑다. 역사가 존재해야 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는 교훈을 줄 것이다.
이는 고종이 을사늑약의 원천무효로 주장하기 위해 수교국 원수들에게 보낸 친서 중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것으로는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서는 이보다 1년1개월 늦은 1907년 6월에 전달됐다.
- 우리가 알고 있던 고종 황제가 우리나라 내정에 대한 일본의 간접을 막기 위한 노력을 알 수 있던 자료가 발견되어 기쁘다.
정상수 명지대 교수는 독일 외교부 정치문서보관소가 소장하고 있던 한국 관련 외교문서를 연구하던 중 이 밀서를 확인했다고 20일 밝혔다.
- 정상수 명지대 교수님과 같이 세계 각국에 숨겨진(?) 자료를 찾는 분들의 노력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역사의식이 발전하는 것 같다. 정상수 명지대 교수님과 같은 분들이 더욱 많아 지면 좋겠다.
1906년 1월에 쓴 것으로 적혀 있는 이 밀서는 당시 고종 황제의 자문관이던 프랑스인 트레믈러를 통해 1906년 5월 독일 외교부에 전달됐으며, 독일 정부는 밀서에 찍힌 고종의 어새(御璽)를 감정해 진짜임을 확인했다.
- 고종 황제께서 직접 밀서를 작성해서, 밀서를 독일에 전달하려 하셨다면 그 상황이 매우 급박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고종은 1905년 11월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조약을 강압적으로 체결하자 이듬해 1월 을사조약의 원천무효를 주장하는 국서를 작성해 영국 신문 '런던 트리뷴'의 기자를 통해 서구 열강에 보냈다. 이런 사실은 1년 가량 후 런던 트리뷴지의 보도를 통해 알려졌으나 국서가 각국 원수들에게 전달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고종 황제께서 작성한 국서가 1년 뒤에 런던 트리뷴지에 보도 됐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역량이 작았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의 통신 및 교통이 열약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현대에서는 인터넷이 있기 때문에 글을 작성하는 즉시 세계 각국에 알릴 수 있는 것이 고마울 다름이다.
이번에 확인된 밀서는 이 국서와 더불어 개별 국가 원수들에게 별도로 보낸 친서로 추정되고 있다.
'대덕국(大德國.독일) 대황제 폐하'로 시작하는 이 밀서는 강대국 일본에 외교권을 박탈 당하고 독립을 위협받은 상황을 전하고 독일이 다른 강대국들과 함께 독립을 보장해줄 것을 당부하는 내용으로, 을사늑약 이후 고종의 절박함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고종황제의 이 밀서는 빌헬름 2세에게 전달되지는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 일국의 황제가 타국의 황제에게 보낸 문서가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 시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치를 알려주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힘이 미약하기 때문에 그만큼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이다. 만약 일본에서 독일에게 문서를 보냈다면, 과연 문서가 전달되지 않았을까?
밀서에 첨부된 당시 독일 정부의 문서에는 '황제에게 보고할 필요가 없다'는 자체 처리결과가 기록돼 있었으며 실제로 빌헬름 2세가 밀서를 확인했다는 서명도 확인할 수 없었다.
이는 밀서가 전달되기 한달 전인 1906년 4월 독일을 제외한 서구 열강 등이 프랑스의 모로코 지배를 인정하면서 독일이 외교적으로 고립된 상황이었고 이 일로 외교부 차관이 사임하는 등 내부적으로도 어수선한 상황이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고 정 교수는 설명했다.
이태진 서울대 교수는 "을사조약 무효를 위해 고종이 수교국 원수를 향해 보낸 최초의 친서"라며 "당시 고종의 주권 수호 노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 비록 시기가 늦었지만, '국가 수호를 위해 노력한 고종황제의 마음이 어떻했을까?' 생각해 보면 마음이 아플 뿐이다. 그와 함께, '얼마 전에 불에 탄 숭례문을 보셨다면, 더욱 아프시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교수는 "독일 외에 러시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 벨기에 등 당시 수교국이었던 유럽 국가들에도 함께 친서를 보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 역시 외교도 자국의 힘을 보존할 수 있는 한 가지 방편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더욱 더 외교에 힘써야 할 것이다.
- 그 동안 문서가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오랜 세월 숨어 있던 밀서가 참으로 반갑다. 역사가 존재해야 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는 교훈을 줄 것이다.
이는 고종이 을사늑약의 원천무효로 주장하기 위해 수교국 원수들에게 보낸 친서 중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것으로는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서는 이보다 1년1개월 늦은 1907년 6월에 전달됐다.
- 우리가 알고 있던 고종 황제가 우리나라 내정에 대한 일본의 간접을 막기 위한 노력을 알 수 있던 자료가 발견되어 기쁘다.
정상수 명지대 교수는 독일 외교부 정치문서보관소가 소장하고 있던 한국 관련 외교문서를 연구하던 중 이 밀서를 확인했다고 20일 밝혔다.
- 정상수 명지대 교수님과 같이 세계 각국에 숨겨진(?) 자료를 찾는 분들의 노력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역사의식이 발전하는 것 같다. 정상수 명지대 교수님과 같은 분들이 더욱 많아 지면 좋겠다.
1906년 1월에 쓴 것으로 적혀 있는 이 밀서는 당시 고종 황제의 자문관이던 프랑스인 트레믈러를 통해 1906년 5월 독일 외교부에 전달됐으며, 독일 정부는 밀서에 찍힌 고종의 어새(御璽)를 감정해 진짜임을 확인했다.
- 고종 황제께서 직접 밀서를 작성해서, 밀서를 독일에 전달하려 하셨다면 그 상황이 매우 급박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고종은 1905년 11월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조약을 강압적으로 체결하자 이듬해 1월 을사조약의 원천무효를 주장하는 국서를 작성해 영국 신문 '런던 트리뷴'의 기자를 통해 서구 열강에 보냈다. 이런 사실은 1년 가량 후 런던 트리뷴지의 보도를 통해 알려졌으나 국서가 각국 원수들에게 전달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고종 황제께서 작성한 국서가 1년 뒤에 런던 트리뷴지에 보도 됐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역량이 작았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의 통신 및 교통이 열약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현대에서는 인터넷이 있기 때문에 글을 작성하는 즉시 세계 각국에 알릴 수 있는 것이 고마울 다름이다.
이번에 확인된 밀서는 이 국서와 더불어 개별 국가 원수들에게 별도로 보낸 친서로 추정되고 있다.
'대덕국(大德國.독일) 대황제 폐하'로 시작하는 이 밀서는 강대국 일본에 외교권을 박탈 당하고 독립을 위협받은 상황을 전하고 독일이 다른 강대국들과 함께 독립을 보장해줄 것을 당부하는 내용으로, 을사늑약 이후 고종의 절박함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고종황제의 이 밀서는 빌헬름 2세에게 전달되지는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 일국의 황제가 타국의 황제에게 보낸 문서가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 시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치를 알려주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힘이 미약하기 때문에 그만큼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이다. 만약 일본에서 독일에게 문서를 보냈다면, 과연 문서가 전달되지 않았을까?
밀서에 첨부된 당시 독일 정부의 문서에는 '황제에게 보고할 필요가 없다'는 자체 처리결과가 기록돼 있었으며 실제로 빌헬름 2세가 밀서를 확인했다는 서명도 확인할 수 없었다.
이는 밀서가 전달되기 한달 전인 1906년 4월 독일을 제외한 서구 열강 등이 프랑스의 모로코 지배를 인정하면서 독일이 외교적으로 고립된 상황이었고 이 일로 외교부 차관이 사임하는 등 내부적으로도 어수선한 상황이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고 정 교수는 설명했다.
이태진 서울대 교수는 "을사조약 무효를 위해 고종이 수교국 원수를 향해 보낸 최초의 친서"라며 "당시 고종의 주권 수호 노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 비록 시기가 늦었지만, '국가 수호를 위해 노력한 고종황제의 마음이 어떻했을까?' 생각해 보면 마음이 아플 뿐이다. 그와 함께, '얼마 전에 불에 탄 숭례문을 보셨다면, 더욱 아프시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교수는 "독일 외에 러시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 벨기에 등 당시 수교국이었던 유럽 국가들에도 함께 친서를 보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 역시 외교도 자국의 힘을 보존할 수 있는 한 가지 방편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더욱 더 외교에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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