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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고 무능한 군주로만 알았던 고종에 대한 평가가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 정부가 독일 외교부 정치문서보관소에 소장돼 있는 대한제국 고종(高宗) 황제의 친서에 대해 본격적인 확인, 보존 작업에 들어갔다.
-역시 언론에서 터뜨려 주어야지, 정부에서 나서는 것 같다. 이러한 작업이 1년, 2년 아니 우리나라가 존재하한 계속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언론이 잠잠해지면 정부에서 작업을 혹시 중단하지는 않을 까? ' 그런 우려가 든다.

발견하고 확인한 정상수 명지대 연구교수(독일사)는 지난 2008년 2월 26일 "중앙일보 보도 후 독일 주재 한국대사관 측에서 독일 정치문서보관소에 있는 해당 문서의 소재와 보존 상태, 열람 방법 등을 문의해와 알려줬다."고 밝혔다.
-중앙일보와 연락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독일 주재 한국 대사관에 연락하여 관련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한 후 언론에 밝혔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외교부 관계자는 "독일 정부의 협조를 받으면 고화질 디지털 카메라로 문서를 촬영해 컬러 영인본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상 문서는 고종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호소하면서 대한제국의 대웅 방안을 주재국 정부에 적극 알리라며 독일, 러시아, 프랑스 주재 공사들에게 보낸 훈령(프랑스어 번역본)과 당시 동북아 지역의 제국주의 경영을 놓고 일본과 경쟁 관계였던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에게 고종이 직접 쓴 한문 친서다.
-독일은 참 대단한 것 같다. 비록, 무시한 문서이지만 보존만큼은 잘하여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고종황제에 대한 인식을 바뀔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줘서 고마울 다름이다.

 
국제학술회의에도 이번에 발견된 새로운 문서들이 보고된다.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연말 하와이에서 열리는 제10회 '한일병합 국제학술회의'에 정 교수가 발견한 자료의 내용과 가치를 보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연히, 우리나라의 역사가 다시 적혀야 하는 만큼 세계 만방에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대한제국을 지키려고 했던 고종의 노력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각계의 목소리도 높다. 외교부 국장급 인사는 "당시 일제의 감시가 삼엄해 옴짝달싹하기 어려웠을 텐데 고종이 그렇게 백방으로 뛰었는지 전혀 몰랐다"며 "마치 잃어버린 역사를 찾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또한, 주진오 상명대 사회과학대 교수(사학 전공)는 "실패한 무능한 군주로 낙인 찍혀 있던 고종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해준 자료들"이라며 "고종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아 한다."고 강조했다
-고종황제의 노력을 아는 사람만 알지 말고, 중고교 국사교과사의 빠른 개편으로 학생들에게 알리고 모든 국민들이 알 수 있게 꾸준히 관련 자료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교육계에선 "을사늑약 이후 고종의 외교적 대응이 산발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이제 체계적이고 일관되게 추진돼 왔다는 증거가 나온 이상 국사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번 기회에 역사의 진실을 밝히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박한남 국사편찬위 자료정보 실장은 "숭례문처럼 잃고 나서 가슴 칠 일이 아니다. 지금도 해외 어딘가에는 우리의 손길이 닿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료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 한 장까지 모두 찾아내 뒤 틀린 역사를 바로잡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2001년부터 해외에 있는 한국사 자료를 수집해 국내로 이전하고 번역하고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진전이 매우 더딘 실정이다. 이번에 발견된 고종의 밀서도 국사편찬위원회가 2003년 복사해 가져왔지만 지난해 말에야 겨우 번역 작업이 시작됐을 정도다. 이태진 교수는 또 "서양사학과 국사학의 접맥도 강화해 우리 역사에 대한 연구가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 현대는 세계화 시대이다. 역사도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역사에 대한 해석도 세계화 시대에 맞게 재해석되어야 한다. 국사와 세계사를 동시에 연구하여 관련지을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지구에는 우리민족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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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황제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1906년 5월 독일 빌헬름 2세에게 보낸 밀서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 그 동안 문서가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오랜 세월 숨어 있던 밀서가 참으로 반갑다. 역사가 존재해야 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는 교훈을 줄 것이다.

이는 고종이 을사늑약의 원천무효로 주장하기 위해 수교국 원수들에게 보낸 친서 중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것으로는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서는 이보다 1년1개월 늦은 1907년 6월에 전달됐다.
- 우리가 알고 있던 고종 황제가 우리나라 내정에 대한 일본의 간접을 막기 위한 노력을 알 수 있던 자료가 발견되어 기쁘다.  

정상수 명지대 교수는 독일 외교부 정치문서보관소가 소장하고 있던 한국 관련 외교문서를 연구하던 중 이 밀서를 확인했다고 20일 밝혔다.
- 정상수 명지대 교수님과 같이 세계 각국에 숨겨진(?) 자료를 찾는 분들의 노력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역사의식이 발전하는 것 같다. 정상수 명지대 교수님과 같은 분들이 더욱 많아 지면 좋겠다.

1906년 1월에 쓴 것으로 적혀 있는 이 밀서는 당시 고종 황제의 자문관이던 프랑스인 트레믈러를 통해 1906년 5월 독일 외교부에 전달됐으며, 독일 정부는 밀서에 찍힌 고종의 어새(御璽)를 감정해 진짜임을 확인했다.
- 고종 황제께서 직접 밀서를 작성해서, 밀서를 독일에 전달하려 하셨다면 그 상황이 매우 급박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고종은 1905년 11월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조약을 강압적으로 체결하자 이듬해 1월 을사조약의 원천무효를 주장하는 국서를 작성해 영국 신문 '런던 트리뷴'의 기자를 통해 서구 열강에 보냈다. 이런 사실은 1년 가량 후 런던 트리뷴지의 보도를 통해 알려졌으나 국서가 각국 원수들에게 전달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고종 황제께서 작성한 국서가 1년 뒤에 런던 트리뷴지에 보도 됐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역량이 작았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의 통신 및 교통이 열약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현대에서는 인터넷이 있기 때문에 글을 작성하는 즉시 세계 각국에 알릴 수 있는 것이 고마울 다름이다.

이번에 확인된 밀서는 이 국서와 더불어 개별 국가 원수들에게 별도로 보낸 친서로 추정되고 있다.

'대덕국(大德國.독일) 대황제 폐하'로 시작하는 이 밀서는 강대국 일본에 외교권을 박탈 당하고 독립을 위협받은 상황을 전하고 독일이 다른 강대국들과 함께 독립을 보장해줄 것을 당부하는 내용으로, 을사늑약 이후 고종의 절박함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고종황제의 이 밀서는 빌헬름 2세에게 전달되지는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 일국의 황제가 타국의 황제에게 보낸 문서가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 시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치를 알려주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힘이 미약하기 때문에 그만큼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이다. 만약 일본에서 독일에게 문서를 보냈다면, 과연 문서가 전달되지 않았을까?

밀서에 첨부된 당시 독일 정부의 문서에는 '황제에게 보고할 필요가 없다'는 자체 처리결과가 기록돼 있었으며 실제로 빌헬름 2세가 밀서를 확인했다는 서명도 확인할 수 없었다.

이는 밀서가 전달되기 한달 전인 1906년 4월 독일을 제외한 서구 열강 등이 프랑스의 모로코 지배를 인정하면서 독일이 외교적으로 고립된 상황이었고 이 일로 외교부 차관이 사임하는 등 내부적으로도 어수선한 상황이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고 정 교수는 설명했다.

이태진 서울대 교수는 "을사조약 무효를 위해 고종이 수교국 원수를 향해 보낸 최초의 친서"라며 "당시 고종의 주권 수호 노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 비록 시기가 늦었지만, '국가 수호를 위해 노력한 고종황제의 마음이 어떻했을까?' 생각해 보면 마음이 아플 뿐이다. 그와 함께, '얼마 전에 불에 탄 숭례문을 보셨다면, 더욱 아프시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교수는 "독일 외에 러시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 벨기에 등 당시 수교국이었던 유럽 국가들에도 함께 친서를 보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 역시 외교도 자국의 힘을 보존할 수 있는 한 가지 방편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더욱 더 외교에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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